전통이라는 이름의 근대적 폭력
그러나 이런 접근들이 여성국극의 짧지만 강렬한 역사를 본격적으로 문제화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국극의 ‘기구한’ 역사는 무엇보다도 ‘전통’이라는 일견 자명해 보이는 관념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당대에 형성된 ‘근대적’ 감각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쫓아 발현된 예술양식인 여성국극은 처음부터 ‘전통문화 존립’이라는 목표를 지닌 채 태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성국극은 공연예술에 대한 ‘근대적 혁신’을 내세우기보다는 기존 전통예술의 의미망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권위에 편승하기를 열망했다. 그다지 유구한 역사를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성(기생)들의 단체’라는 점에서 비롯된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국극은 스스로를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근거를 가진’ 양식이자, 단지 대중공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국악’, 즉 국가의 기획에 준거하는 예술활동임을 강조하고 정식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당대 여성국극 공연의 일부 홍보문구들은 “민족 오페라” 같은 수식어에 기댔고, 가장 유명했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단 임춘앵’의 단가(團歌)는 자신들의 활동이 ‘민족’과 ‘국가’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전통문화 존립’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편집증적으로 강조했다.2)
우연치 않게 남산의 공연장들에 오른 작업들 가운데는 전통과 근대가 공모하면서 소외시킨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특히 '여성국극 프로젝트'로 알려진 정은영 작가의 작업은 배제된 것을 다시 소환하고 새롭게 권리를 부여한다. 지금의 전통과 공연예술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여성국극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면, 이제 그것을 동시대적으로 살아있게 하기 위해 그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제시한다.
역사적 굴곡과 재조명의 시도들
한국전쟁 전후 대중적 인기를 모은 공연양식인 ‘여성국극(女性國劇)’은 전통국악 연희의 서구화된 양상이자 판소리를 분창화(分唱化)・장면화(場面化)하여 연극적으로 무대화한 ‘창극(唱劇)’의 한 종류다. 오직 여성배우들만 무대에 서는 여성국극은 1950년대 한국 공연예술의 어떤 장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주목을 받으며 독자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1960년대 말부터 서서히 사그라든다. 흥행가가 등을 돌렸고, 평단의 혹평이 쏟아졌다. 여성국극은 ‘진정한’ 창극/국극을 파괴함으로써 “창극 부재”를 초래한 요인이라고 공격받았다.1) 여성국극의 예술적 성장과 그 가치는 폄훼되었으며, 이는 장르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현재 여성국극의 명맥은 아주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데, 후속세대에 대한 교육과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사실상 이 장르는 사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여성국극을 재조명하려는 몇 차례의 노력이 있었으나, ‘여성국극’이라는 공연장르의 부활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대구극장 분장실서 배우 및 스태프들과 담소중인 임춘앵, 1950년대 추정, 조영숙 제공(우)
<춘앵전>(2010)으로 대표되던 만화시장에서의 관심이 긴 소강상태에 머무는 듯했으나, 근래 혜성처럼 등장한 웹툰 <정년이>(2019~)는 10~20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여성국극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촉발했다. ‘기입되지 않은 역사’로 남겨질 뻔한 여성국극에 대해 다양한 현재적 분석과 의미화의 시도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1950년대를 풍미한 여성 국극단을 다룬다. ⓒ 네이버웹툰
전통이라는 이름의 근대적 폭력
그러나 이런 접근들이 여성국극의 짧지만 강렬한 역사를 본격적으로 문제화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국극의 ‘기구한’ 역사는 무엇보다도 ‘전통’이라는 일견 자명해 보이는 관념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당대에 형성된 ‘근대적’ 감각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쫓아 발현된 예술양식인 여성국극은 처음부터 ‘전통문화 존립’이라는 목표를 지닌 채 태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성국극은 공연예술에 대한 ‘근대적 혁신’을 내세우기보다는 기존 전통예술의 의미망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권위에 편승하기를 열망했다. 그다지 유구한 역사를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성(기생)들의 단체’라는 점에서 비롯된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국극은 스스로를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근거를 가진’ 양식이자, 단지 대중공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국악’, 즉 국가의 기획에 준거하는 예술활동임을 강조하고 정식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당대 여성국극 공연의 일부 홍보문구들은 “민족 오페라” 같은 수식어에 기댔고, 가장 유명했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단 임춘앵’의 단가(團歌)는 자신들의 활동이 ‘민족’과 ‘국가’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전통문화 존립’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편집증적으로 강조했다.2)
살아 있는 전통을 위한 해체적 재개념화
동시대적 역동성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전통예술은 존폐의 기로에서 가장 시대친화적인 전략을 취하는 역설을 보인다. 이는 물론 형식 면에서 행해지는 실험과 고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통’ 공연이 관례를 벗어나는 시도를 행했을 때 으레 “청바지 입고 판소리한다”라는 식의 배타적인 평가가 부여되어온 사례들을 보건대, ‘전통’에 대한 혁신이나 도전마저 소위 ‘퓨전(fusion)’이라는 또 다른 ‘전형화된’ 의미화가 가능할 때에만 용인되는 듯하다. 그러나 ‘전통이 새로운 옷을 입고’ 변용 혹은 현대화되었다는 식의 분석은 꽤 진부할 뿐 아니라, 대체로 불충분하다. 그런 지적들은 ‘전통’이라는 관념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나 수호되어야만 하는’ ‘원형’으로서 전통의 위치를 절대화하고 공고히 하는 데 너무 많은 자원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오히려 전통에 대한 그 ‘당연한’ 인식이 ‘전통’을 확장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은 채, 전통을 ‘낡은 것’ 혹은 ‘이미 수명을 다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거부와 저항이 아닌, 배우고 달아나기
2019년 11월, ‘교토 익스페리먼트(Kyoto Experiment)’(2019)에 필자의 공연 <변칙 판타지_한국판>이 초대되었을 때, 나는 서울에서의 초연 버전을 그대로 공연하되 교토의 정취와 공연사적 맥락을 반영하고자 했다. <변칙 판타지>는 2016년 서울 남산아트센터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2017년 타이페이에서의 대만판, 2018년 요코하마에서의 일본판과 고아에서의 인도판으로 공연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것’으로도 ‘현대적인 것’으로도 온전히 분류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국극의 배제된 역사와 그 주변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공연될 때마다 각 도시의 성별정치와 소수자성의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에 각 공연의 기조와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극중, 무대를 잃어버린 여성국극의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의 삶의 무게가 갈등과 위기를 반복적으로 불러낼 때, 그와 마찬가지로 배제되고 타자화된 자신들의 삶과 그 고통을 무대 위에서의 환희로 승화시키는 게이(남성 동성애자) 합창단 ‘지보이스’가 등장한다. 이로써 <변칙 판타지>는 타자들 간의 연대감과 상호 전승을 통해 ‘전통’이란 얼마든지 다시 쓰일 수 있음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변칙 판타지>의 ‘코러스극’은 여성국극 공연의 백미인 창무(唱舞)의 스펙터클과 연극의 시원으로 알려진 ‘그리스 비극’을 참조해 ‘퀴어문화(queer culture)’의 이종적이고 캠피한(Camp) 미학적 실험을 전유한 장치다. 각 도시의 퀴어 합창단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을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실어 나를 수 있었다.
ⓒ 교토익스페리먼트
ⓒ 교토익스페리먼트
주
1) 박황, 『창극사 연구』, 백록출판사, 1976.
2) 여성국극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는 졸저 『전환극장』(정은영 외, 포럼에이, 2016) 참조.
3) 한석정, 『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체제의 기원』, 문학과지성사, 2016.
4) 에릭 홉스봄 외, 장문석・박지향 옮김,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4.
5) 김지혜, 「1950년대 여성국극의 단체활동과 쇠퇴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여성학』 27-2, 2011.